지난 5월 칸 필름마켓에 95분짜리 AI 액션 영화가 올라왔습니다. 카자흐스탄 제작팀 15명이 14일 만에, 배우도 세트도 없이 만들었죠. 다들 "AI가 드디어 장편을 완성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는 끝내 극장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영화의 한국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시사회는 국내의 한 영화관에서 개최됐죠. 물론 정식 개봉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AI 영화의 첫 시장은 스크린이 아니고, 마지막 관문도 기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I 영화 〈헬 그라인드〉의 총비용은 50만 달러 미만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 안의 배분입니다. 약 40만 달러, 예산의 80%가 AI 컴퓨팅 비용이었습니다. 배우와 세트, 로케이션에 사용되던 비용을 인공지능 연산으로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극장 배급망을 타지 않았습니다. 아니 탈 수 없습니다. 만든 곳이 영화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작사는 AI 영상 플랫폼 '힉스필드'였습니다.
모터쇼의 컨셉카
모터쇼 가보셨나요? 모터쇼에는 팔지 않는 컨셉카가 언제나 돋보입니다. 아무도 살 수 없는데 회사는 매년 그것을 만들죠. 그 앞에 멈춰 선 사람이 결국 옆 전시대의 양산차를 계약하기 때문입니다. 〈헬 그라인드〉는 극장 대신 힉스필드에 올라갔고, 그 옆에서는 플랫폼의 구독모델을 팝니다. 같은 기간 오픈AI의 소라는 6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힉스필드는 매출 런레이트 5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과거엔 영화를 팔기 위해 예고편을 만들었지만, 이젠 도구를 팔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제피르는 왜 멈췄나?
올해 4월 공개된 힉스필드의 또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 〈제피르〉는 다섯 명의 아이돌 여성 파일럿이 메카 전투와 K-POP 무대를 오가는 작품입니다. 시댄스 2.0의 기술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개 직후, 케이팝 팬들의 댓글공세에 시달렸고 현재 시리즈는 멈춰있습니다. 사실 힉스필드를 사용하는 사람의 85%는 영화인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마케터입니다. 즉, 광고 플랫폼에 가깝다는 의미죠.
고르는 사람의 안목
힉스필드 <헬 글라인드>의 첫 25분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1만 6181번을 생성해 253개 샷을 골랐다고 말합니다. 샷 하나에 평균 64회의 생성이 필요했던 겁니다. AI가 딸깍 한 번으로 영화를 뽑은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죠. 촬영장의 노동이 '고르는 노동'으로 형태를 바꿨을 뿐입니다. 기계는 무한히 생성하지만, 무엇을 남길지 아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갖게 됩니다. 부족한 것은 성능이 아니라 서사죠.
프롬은 콘텐츠 기업의 AI 증폭 전략을 함께 설계합니다. 영화·드라마·숏폼·웹툰·게임·광고 스튜디오를 대상으로 스토리에서 비디오, 스튜디오 전용 AGENT 제작까지 진단하고, 조직 내재화까지 이어지는 워크플로우를 만듭니다. 도구를 몇 개 더 얹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컨셉카는 구경거리로 끝납니다. 어디로 갈지 아는 팀만 운전대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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