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새로운 기술이 품는 가장 오래된 벽 지난주, 일산에서 미팅이 있어 백석동 성당에 잠시 들렀습니다. 매끈한 곡면 천장 아래, 제대 뒤의 벽은 손으로 쌓아 올린 돌이었습니다. 그 벽 앞에서 AI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새 모델이 쏟아지는 시대, 우리는 새것이 옛것을 지운다고 믿습니다.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표면이고, 무엇이 기저(base)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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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 뒤의 돌벽
- 기저 모델이라는 이름
- 표면은 바뀌고 기저는 남는다
- 당신의 기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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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뒤의 돌벽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성당은 고요했습니다. 부드러운 곡면 천장, 매립된 조명, 잘 닦인 바닥. 그런데 모든 시선이 모이는 제대 뒤 벽만은 달랐습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린 거친 돌. 가장 오래된 건축 기술이 가장 현대적인 공간의 심장에 서 있었습니다. 설계자는 새로움은 혼자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아닐까. 새것은 옛것을 지우며 오는 것이 아니라, 옛것 위에 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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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 모델이라는 이름
AI 업계는 근간이 되는 모델을 '파운데이션 모델', 우리말로 '기저 모델'이라 부릅니다. 챗봇도, 에이전트도, 이미지 생성도 전부 그 위에 올라간 층들입니다. 그럼 그 기저는 무엇으로 쌓였을까요. 최신 반도체? 아닙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부터 어젯밤 누군가의 블로그까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 올린 문장들입니다. 돌 하나하나가 문장이고, 그 벽이 기계를 떠받칩니다. AI의 기저는 실리콘이 아니라, 인간이 쌓아온 이야기라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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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은 바뀌고 기저는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표면만 봅니다. 매주 새 모델이 나오고, 버전 번호가 바뀌고, 벤치마크 순위가 뒤집힙니다. 사람들은 마치 벽지를 고르듯이 "어떤 모델이 제일 좋아요?"라고 묻습니다. 벽지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건물을 지탱하는 건 벽지가 아닙니다. 좋은 질문, 축적된 관점, 이야기를 알아보는 눈. 버전이 바뀌어도 남는 것들이 기저입니다. 격차는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아래 무엇을 쌓아뒀느냐에서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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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저는 무엇입니까
기계도 인간이 쌓은 기저 위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기저의 주인인 우리는, 자기 벽을 돌보지 않습니다. 읽은 책, 쓴 문장, 견뎌낸 경험. 그것이 당신이라는 건물의 돌입니다. 프롬프트는 표면의 기술이고, 기저는 사람의 두께입니다. 문제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당신의 기저입니다. 오늘, 당신의 기저에 어떤 돌 하나를 얹으셨나요?
두 번째 책 소식을 전합니다. 『콘텐츠 엔지니어링(가제)』 출간 계약을 마쳤습니다. 도메인 지식을 갖춘 국내 최고의 AI 디렉터 9분과 함께, 각자의 현장에서 쌓아 올린 돌을 한 권의 벽으로 세우는 작업입니다. 첫 번째 돌은 이미 놓여 있습니다. 기저가 단단한 사람들이 모이면, 벽은 건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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